Akrasia
May 23, 16
게임 이론에서 다루는 다양한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죄수의 딜레마일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의 흥미로운 점은 양쪽 다 협력을 하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음에도 배신이 우월 전략이기에 합리적인 주체는 배신을 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같은 게임을 반복해서 수행하면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문제를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팃포탯Tit for tat과 그 변형 전략이 매우 좋은 전략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즉, 반복해서 게임을 수행하면 비록 한 번의 게임에서는 배신을 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더라도 미래를 위해 협력을 하게끔 하는 강력한 동인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보상을 포기하는 행위를 하고 싶어 했으면 할 때가 많다. 가령 내일 치르는 시험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당장 노는 대신 괴롭지만 시험 공부를 했으면 한다. 굳이 위와 같은 미묘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보통 그 시점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노는 것이지 시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자제력의 문제는 지금의 보상을 바라는 나와 미래의 보상을 바라보는 나라는 두 주체의 갈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갈등은 어떤 의미에서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문제처럼 다룰 수 있다.1 여기까지 문제를 끌어낸 이후부터 내가 당장 바라는 욕구를 인지하고 이를 그냥 무시하는 것이 가능한 선택임을 깨달았다.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에서 나는 배신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느끼며 이를 실행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배신의 강력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협력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며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위의 전개는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의 바탕에 깔린 가정을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않는다. 일차적으로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직접적인 보복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같은" 존재라는 점이 보복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지금의 내가 협력을 하는 것이 미래의 내가 협력을 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기대를 해야만 한다는 점, 각종 합리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 등의 문제점들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아크라시아akrasia를 다룰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다. 이제는 적어도 더 이상 무언가 하고 싶어야만 할 수 있었던 시기는 벗어났다.23
물론 이런 접근이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어떤 순서로 결정하는 것이 좋은지의 문제를 풀어주지는 않기에 여전히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