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놀음
Jan 06, 15
누군가 나를 설정 덕후라고 불렀는데, 게임을 하거나 소설을 읽으면 설정의 세세한 부분을 따지곤 해서이다. 나는 주어진 세계관에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많은 픽션이 현실에서의 다양한 층위의 편견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조금이라도 다른 세계라면 그런 편견이 모순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나의 설정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딱딱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무모순성에 대한 매료라고 할 수 있겠다. 수학에서는 주어진 공리계에서의 무모순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이런 욕구가 아마 결국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까지 이어졌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학자들은 궁극의 설정 덕후인 것 같다.
엄밀하게 무모순성이 필요한 경우는 차치하고 현실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무모순성을 추구하는 이유가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모순이 가득한 체계보다 무모순체계가 더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