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rain

Harmless stuff is for the weak.

Autopilot

Dec 04, 14

평소 행동의 대부분은 의식적인 선택을 통하지 않고 일종의 자동 조종 상태에서 결정된다. 이는 빠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고 불필요한 선택의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해준다.

무술을 연마할 때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한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의식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의식의 개입을 없애면서 혹시 있을 수 있는 공포에 대한 반응,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 등을 모두 건너뛰고 미리 준비된 올바른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의식이 자동 조종 상태일 때, 어떤 방식으로 동작할지 결정되는 건 반복된 학습에 의존할 수도 있지만 행동 주체자의 정체성 혹은 그 상황에 처한 본인의 역할에 의해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로 특정 규칙과 행동 방식이 강제될 수 있다.

토론 중 어떤 의견을 견지하다가 내가 왜 그런 시각을 방어하는지 고민할 때가 종종 있다. 문제에서 멀어져서 살펴보면 내가 지닌 가치관이나 특정 역할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시각을 방어하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문제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정체성 혹은 역할을 지키는 것에 더 집중한 케이스이다. 일견 이런 상황을 피해서 늘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의식적으로 정체성/역할을 정제하고 가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