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행복
Nov 19, 14
행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흥미를 갖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즐거움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으나, 그 가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더 세련된 미적 감각을 길러야 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교육은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실용적인 지식의 획득이라는 목표 외에도 행복 증진을 위한 미적 감각의 양육이라는 목표도 갖게 된다.
I came to centre my attention increasingly upon external objects: the state of the world, various branches of knowledge, individuals for whom I felt affection.
Education used to be conceived very largely as a training in the capacity for enjoyment — enjoyment, I mean, of those more delicate kinds that are not open to wholly uncultivated people. In the eighteenth century it was one of the marks of a ‘gentleman’ to take a discriminating pleasure in literature, pictures, and music. We nowadays may disagree with his taste, but it was at least genuine.
It is one of the defects of modern higher education that it has become too much a training in the acquisition of certain kinds of skill, and too little an enlargement of the mind and heart by any impartial survey of the world.
수학이나 물리학 등은 물론 실용적인 가치가 매우 크지만 그 자체로 놀라우리만치 큰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추상적인 구조를 다루며 느끼는 감명, 세계의 작동 원리를 간명하게 설명할 때의 즐거움은 매우 크다. 내가 아는 분야 외에 다른 분야의 이야기는 하기 힘들지만 아마 미술이나 음악, 각종 인문학이라 묶이는 다양한 학문 분야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 우리는 패턴 인식 기계이고, 패턴의 인식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1
패턴 인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Ted Chiang의 단편 Understand)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