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urain

Harmless stuff is for the weak.

메타 전략으로서의 정체성

Nov 30, 14

많은 경우 생산적인 일은 귀찮음을 동반한다. 특히나 하고 싶은 일의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이는 쉽사리 미루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일하는 대신 웹툰을 보거나 SNS를 하기가 훨씬 쉽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극복하기 위해 자기통제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자기통제력은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금세 고갈되며, 의지력만 사용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무조건적 명령문을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과 행동을 묶어서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반드시 이런 행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는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뽀모도로 테크닉이 이런 효과를 잘 활용하기에 미루기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체성은 그에 묶인 가치들이 있다고 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무조건적 명령문보다 훨씬 모호한 개념이다. 보통의 무조건적 명령은 훨씬 구체적이고 작은 느낌이 든다. 구체적이고 작기 때문에 쉽게 조건을 확인하고 명령을 실행하는 것도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기도 하다. 반면 정체성이 강력하게 부여되면 그에 묶인 가치의 구현도 강하게 집행할 수 있다. 하나의 정체성에 묶인 가치는 여럿일 수 있기에 이는 일종의 메타 전략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잘 모르는 기술을 새로 시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나는 꾸준히 내가 잘 모르는 도구를 손에 익히려고 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이는 늘 새로운 도구를 시도하고 잘 사용하지 못하는 도구를 체화하도록 나를 강제한다. 나의 정체성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돈을 받고 프로로서 작업하는 때를 제외하면 늘 새로운 도구를 손끝에 걸어두고 있다. 어떤 작업이든 새로운 도구를 활용할 일은 늘 있게 마련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기계 학습 스터디를 진행 중인데, matrix factorization의 개념을 배운 적이 있다. 나는 스터디에 이를 구현하여 들고 가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문제는 명확하지만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나는 이때 굳이 잘 모르는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도구를 손에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식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라이브러리는 끝도 없이 많다. 그리고 가치 있는 도구는 쌓이면 나에게 큰 재산이 된다. 이런 과정 한두 번으로는 도구를 익히는 데 역부족이지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도구가 어느 순간 손에 붙게 된다.

유용한 정체성을 탐색하고 스며들게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많은 메타 전략이 그러하듯 활용도가 무척 클 수 있다.